"己所不欲 勿施於人."
공자는 말한다. “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라.” 그러나 이 말은 단순한 소극적 금지의 윤리로 머물지 않는다. 거기엔 더 깊은 울림이 있다. 그것은 곧, 타인의 고통과 결핍을 나의 것으로 여기라는 초월적 공감의 명령이다. 결국, 나누는 삶은 타인의 상처에 나의 시간과 마음을 기꺼이 보태는 삶이다.
한겨울 새벽, 지하철역 입구의 그 남자를 기억한다. 찬바람을 피하려고 신문지를 덮은 채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그에게, 나는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손난로를 건넸다. 그가 내게 내뱉은 말은 단순했다. "고맙습니다." 하지만 그 짧은 말 안에 스민 체온은 잊을 수 없었다. 내 하루는 변함없이 반복되는 일상이었지만, 그의 하루는 누군가의 작은 나눔으로 한 겹 따뜻해졌으리라. 그날 이후, 나는 알았다. 나눔이란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도구가 아니라, 인간다움을 지키는 아주 조용한 약속이라는 것을.
사실 나눔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. 우리는 늘 바쁘고, 피곤하며, 가진 것도 충분치 않다고 느낀다. 그러나 이기적인 무관심에 익숙해질수록, 우리는 인간의 본성에서 멀어지고 만다.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인간의 진정한 존재는 ‘나-너’의 관계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했다. ‘나-그것’의 도구적 관계가 아닌, 인격과 인격이 만나는 자리. 바로 그곳에 나눔의 본질이 있다.
학창 시절, 친구 하나가 유독 말이 없고 외로워 보였다. 알고 보니 부모의 이혼과 생활고로 마음을 닫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. 나는 그에게 무슨 대단한 것을 해준 것도 아니었다. 점심시간에 함께 밥을 먹고, 집까지 같이 걸으며 그저 그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. 하지만 훗날, 그는 내게 말했다. “너랑 함께한 그 시간이, 내 인생에서 가장 따뜻한 기억이야.” 그 말을 들은 순간, 나는 깨달았다. 진정한 나눔은 물질이 아닌 마음의 공유라는 것을.
논어 속 공자 역시 지식과 지혜를 혼자 간직하지 않았다. 그는 제자들과 가르침을 나누며, 스스로도 끊임없이 배우고 나눴다. 그는 ‘배움’을 통한 나눔의 연금술사였다. 배움과 앎이 타인을 위한 통찰로 이어질 때, 그것은 곧 인(仁)의 실현이 된다. 인은 결코 개인의 미덕에 머무르지 않는다. 그것은 타인을 향한 살아 있는 실천이며, 공동체를 존립하게 하는 숨결이다.
나누는 삶은 결국, 내가 누군가의 슬픔에 머무를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일이다. 물질을 넘어서, 시간과 관심, 배려와 존중을 나누는 삶. 그것은 때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길이며, 외면하고 싶은 진실을 마주하는 고행일 수 있다. 그러나 그 길 끝에서 우리는,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존재 이유를 만난다.
세상은 각자의 무게로 바쁘지만, 그 무게를 서로 조금씩 나누는 순간, 우리는 혼자가 아니게 된다. 그리고 그 짧은 순간들 속에, 우리는 참으로 ‘살았다’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.
'삶과 인문학' 카테고리의 다른 글
도를 아십니까? 진짜 ‘도’에 대해 말해봅시다. PS 멧돼지 (0) | 2025.04.06 |
---|